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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전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

by 캣-츠비 2021. 8. 10.

안녕하세요. 모두의 백과사전 by 캣츠비 입니다.

 

아멜리아 에어하트(Amelia Earhart)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여성 비행사로, 여성 비행사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

여성 최초로 비행기를 조종하여 대서양과 북미대륙을 횡단하는 등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비행사로서도 상당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하지만 1937년 7월 2일 아멜리아 에어하트와 항해사 프레드 누난(Fred Noonan)이

태평양 상공을 비행하다가 실종된 후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에어하트가 어떤 일로 실종되었는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오늘 포스트에서는 에어하트의 마지막 비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에어하트, 새로운 기록 경신을 목표로 하다


1937년 5월 21일, 에어하트는 캘리포니아주의 오클랜드에서 이륙하여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적도를 따라 약 4,7000km의 세계 일주 비행을 하려는 그녀의 두 번째 시도였습니다.

앞서 3월에도 시도했지만 하와이의 호놀룰루에서 이륙할 때 타이어 펑크 사고를 겪으면서 중단되었습니다.


앞선 도전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에어하트는 적도를 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최초의 비행사가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 실패의 위험도 컸지만 성공은 에어하트의 명성을 높여줄 것이며, 부부의 재정상태도 해결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새 비행기를 구입하고 수리하는데 상당한 대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와이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에어하트의 계획은 일부 변경이 있었습니다.

1차 도전때의 계획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비행하는 것이었지만, 2차 도전에는 캘리포니아를 출발하여 마이앰미,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양, 동남아시아, 호주를 거쳐 하와이, 미 서부로 도착하는 비행루트였습니다.

이 경로는 그녀가 비행 도중 악천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지만 가장 힘든 여정은 태평양에 있는 2마일 길이의

작은 점인 하울랜드 섬에 중간 기착하는 것이었습니다.

 



비행 전에 CW 송신기를 제거하다.


2차 도전은 순조로웠습니다. 프레드 누난은 원래 계획대로 여행 도중 에어하트와 합류했으며, 함께 비행을 이어나갔습니다.  누난은 훌륭한 항법사였지만  불행히도 에어하트와 누난 모두 무선 코드에는 능숙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에어하트는 비행기에서 CW(전신 코드 키) 송신기를 제거했습니다.

또한 출발하기 전에 500킬로사이클의 해상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는 후행 안테나도 제거했습니다.

그들은 익숙하지 않은 모스 부호 대신에 더 높은 대역폭에서 음성으로 통신할 계획이었습니다.

에어하트와 누난은 브라질, 다카, 카르툼, 방콕 및 호주의 다윈 등을 거쳐 6월 29일에 뉴기니의 라이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 곳에서 며칠을 보낸 후 에어하트와 누난은 현지 시간으로 7월 2일 오전 10시에 라이 공항에서 이륙하여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하울랜드 섬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악천후로 하울랜드에 착률하지 못하다.


에어하트의 라이 공항을 이륙힌 이후 미군은 해안경비대와 연안경비정을 이용하여 그녀의 비행을 하울랜드 섬까지 안내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울랜드 섬에 설치된 고대역폭 무선방향 탐지기는 당시 작동을 하지 않는 상황이었고,

배행 14시간 15분 후, 연안 경비정은 에어하트로부터 "흐린 날씨"에 대한 다소 왜곡된 첫 번째 무전을 받았습니다.

좀 더 명확한 무전을 받았지만 무전 내용은 에어하트가 "우리는 돌고 있지만 섬을 볼 수 없으며 경비정의 무전을 들을 수 없다." 였습니다. 미군의 경비정은 계속해서 그녀의 비행기와 통신하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에어하트의 비행기는 무전을 내보낼 수 만 있었고 받을  수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하울랜드 섬의 날씨는 맑았지만 북서쪽으로 약 30마일 지점에는 구름이 잔뜩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어하트가 도중에 구름과 악천후 속에서 해매고 있었다면 항해사인 누난이 정확한 방향을 알기 어려울 수도 있었습니다. 에어하트의 비행기가 보낸 마지막 무전은 비행 후 20시간 14분에 이루어졌으며 "북쪽과 남쪽으로 계속 비행할 것"이라고 표시되었습니다. 결국 에어하트의 비행기는 하울랜드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에어하트의 실종 원인


에어하트와 누난의 실종 이후 미국 해안경비대는 물론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일본 국적의 어선까지 그들을 찾기 위해 수색을 벌였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에어하트의 남편인 조지 P. 퍼트남은 사재까지 털어가며 수색을 이어갔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실종 2년 후에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되었습니다.

 

에어하트의 비행기의 추락원인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연료 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2년 간의 수색을 통해서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실종 원인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또 다른 가설은 에어하트와 누난이 하울랜드 섬에서 남쪽으로 약 350해리 떨어진 가드너 섬에 도착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 산호섬에서 몇주간 생존했지만 물과 음식 부족으로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주장입니다.

그 근거로 탐색대가 이 섬에 도착하여 비행기의 잔해로 추정되는 부품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1940년에는 중년 남성의 유골로 청되는 두개골과 일부 뼛조각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DNA 분석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는 그것이 에어하트의 유골일것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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