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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전

적십자의 역사

by 캣-츠비 2021. 7. 14.

안녕하세요. 모두의 백과사전 by 캣츠비 입니다.

 

적십자 상징인 빨간색 십자가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사람들은 적십자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인도적 노력을 통해 적십자는 긴급 지원, 재난 대비 교육 및 재난 구호를 제공합니다. 

오늘 포스트에서는 적십자가 어떻게 설립되었으며 전 세계로 확장되어 전쟁,

자연 재해 및 기타 재난으로 황폐해진 수백만 명을 치유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앙리 뒤낭과 적십자의 탄생


1850년대 후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대항하여 독립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솔페리노 전투는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의 막바지에 일어난 전투로, 스위스 출신의 사업가인

앙리 뒤낭(Henry Dunant)는 사업차 이탈리아를 방문하던 중 우연히 이 전투를 목격하고

수천명의 부상당한 병사들을 국적에 관계없이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약 40,000명의 사망, 부상, 실종자가 나온 이 전투에서

이들을 도울 인력과 물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뒤낭은 1862년 이 전투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을 출판했으며, 

이 책에서 그는 훈련된 자원 봉사자를 사용하여 전쟁 중에 양측에서 부상당한 군인을 돕기 위한 

범 세계적인 구호 조직의 창설을 주장했습니다.

 

1863년, 뒤낭은 스위스에 기반을 둔 위원회에 합류하여 그의 계획을 사용하여 국제 적십자 위원회를 창설했습니다.

흰색 바탕에 적십자의 친숙한 상징은 스위스 국기의 반대 색상입니다. 이는 전장에서 의료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깃발을 고안하다가 생각해낸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의 노력은 계속되어 이듬해인 1864년에는 전쟁에서 정치, 공교, 이념, 그리고 국적에 관계없이 구호활동을 원칙으로 하는 제네바 협약이 체결되기에 이릅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적십자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적십자사는 공공 간호프램을 가동시켜 부상당한 군인은 물론 일반 시민의 응급처치를 담당했으며, 파괴된 도시에서 깨끗한 식수를 보급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자신들의 설립 원칙에 따라 조건없는 구호활동을 펼치자, 적십자 활동을 지원하는 이는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전쟁 시작 무렵인 1914년, 적십자 지부는 세계적으로 107개 밖에 없었지만, 전쟁 말기인 1918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3864개의 지부로 확장되었습니다. 적십자에서 일하거나 적십자를 후원화는 회원도 17,000명에서 단 4년여 만에 3,10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1918년에 도착한 기부금은 당시 금액으로 무려 4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이 돈으로 적십자는 구급차를 증원하고 약 2만여 명의 간호사를 증원했습니다.

이 덕분에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자 간호사를 세계 각지의 병원에 투입하여 환자를 돕고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적십자


적십자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다시 필요했으며 민간인 전쟁 희생자 및 연합군에게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2차 대전 시에 104,000여 명의 간호사가 전장에 투입되었으며,

적십자사는 또한 포로들을 위해 약 2,700만 개의 구호품을 제작, 배포했으며, 300,000톤 이상의 보급품을 유럽 전역에 투입했습니다.

특히 미국 적십자사는 이 기간 동안 헌혈 장려 프로그램을 통해  600만 리터 이상의 혈액을 모아 유럽의 전장에 보냈습니다.

 


현대 시대의 적십자


적십자의 혈액 수집 서비스는 이후 몇 년 동안 현대화되었으며 계속해서 대중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확장되었으며 현재 그들의 서비스 범위에는 HIV/AIDS 교육, CPR/AED 교육, 국제 구호 및 개발, 군대 및 그 가족에 대한 지원, 혈액 수집 및 배포가 포함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적십자사는 식량 배급, 격리 대피소 지원,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 관리 서비스 제공,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혈액 수집 등을 통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 왔습니다. 

 


우리 나라와 적십자

의양군 이재각

우리나라에서 적십자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대한제국 시절인 1903년, 우리나라는 제네바 협약에 가입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1905년 대한제국 적십자사를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초대 총재는 고종의 3남인

의양군 이재각이 맡았을 정도로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적십자사를 적극 지원하였습니다.

 

1910년 일제의 국권침탈로 잠시 해체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1919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대한적십자사를 다시 설립했으며, 독립군과 재외거주 동포를 위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해방이후인 1947년 조선적십자사를 설립하였고, 1949년 명칭을 대한적십자사로 변경한 이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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